성호 이익 선생이 평생 학문을 연구하던 첨성리 - 경기도 안산 일동 탐방

0

 첨성(瞻星 - 별을 바라본다는 의미)으로도 불리고 점성으로도 불리던 현재의 안산시 일동은 수도권 변방의 조그만 동네입니다. 

흔한 아파트 하나 들어서지 않은 동네로 요즘의 잣대로 본다면 개발 호재가 있다거나 하는 영양가 높은 곳은 아니지만 성리학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며 정쟁에만 신경 쓰던 사대부들이 당시 변화하는 세계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18세기 조선시대 후기로 넘어가는 시점에 중요한 학자 한 분이 평생 학문을 연구하던 동네입니다.

 

안산 군읍지에 실린 안산 지도 오른쪽 끝에 광주와의 경계 지점에 보이는 점성 마을이 이곳으로 당시만 해도 현재 성호 공원과 연결된 노적봉 옆으로는 바다였습니다. 1842년 지도


성호 선생이 서호라 부르던 바닷가 조용한 어촌 마을이던 이곳에 성호 이익 선생은 평생 은거하면서 연구한 것은 현재의 실학이라 명명된 당시의 흐름에 중요한 위치에 놓아야 할 경지의 학문이 되었습니다. 성호 선생이 터놓은 학문은 안정복 권철신등 다양한 제자들을 배출했고 조선 후기 최고의 학자라 할 수 있는 다산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성호는 양반도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당시로선 매우 혁신적인 발상을 제안해 현재의 실질적인 부분을 중시하면서도 퇴계학을 깊이 있게 수용해 성리학적 질서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퇴계 사랑은 말년에 거동이 불편해지자 옆동네 살던 표암 강세황에게 도산서원도를 그려 달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성호 선생의 부탁으로 표암 강세황이 그린 도산서원도 - 국립중앙박물관





2019년 성호 기념관(성호 박물관 전신)에서 주최해 다녀온 도산서원 답사

경북 안동 도산서원




성호 이익 초상화 (성호박물관) - 1780년 정조4년에 처음 제작되어 포천의 옥동서원(옥동은 이익의 세째형 이서의 호)에 있었는데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소실 현재의 영정은 후손 이돈환이 1989년 초상을 관리하던 분과 종손인 이삼환의 영정을 참고하여 제작.

조선시대 왕실이나 사대부의 초상은 사진처럼 묘사하는게 원칙이자 규칙이었기에 실제의 모습과 매우 흡사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이익의 학문적 천착에는 부친인 이하진(李夏鎭)이 청황제에게 받은 궤사은으로 북경에서 들여온 수천여권의 장서들이 크게 작용했고 지척거리에 있던 만권당인 청문당의 장서들도 가져다 보았습니다.

청문당의 중심 인물인 해암 유경종은 성호의 제자로 당시 빌려간 책을 돌려달라는 이야기에 실랑이를 벌이는 인간적인 모습의 일화도 남아있습니다. 물려받은 토지와 재산을 모친 사후에 문중에 되돌려줄 정도로 강직한 성품으로 평생을 아주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아온 성호선생의 사적인 욕심은 책욕심이었습니다.

 


 

 

안산 첨성리 표석(점섬,점성) - 일동 하모니마트 옆 (안산 식물원 사거리에서 화림선원 방향)

첨성리 마을유래 안내 안산 일동

 

행정구역의 변경이 많았던 동네로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광주에서 일제시대에는 수원에 편입되었다 다시 화성으로 변경되었고 일동중에서도 점성마을은 시흥군 수암면에 속해있다 1986년 안산시에 편입되었습니다. 경계지점이라 그런지 행정구역 변경이 어지러울 정도로 많았습니다. 

이곳에 뿌리내리고 살던 이익의 형이자 스승이던 이잠의 호는 섬계(剡溪)이고 이곳과 충청도 예산을 오가며 열렸던 시회는 섬사편(剡社編)으로 엮여있으며 제자이자 일족이던 이현환의 호는 섬와(蟾窩)였는데 이곳의 산을 섬산(蟾山, 剡山)이라 불렀다고합니다.

섬산은 현재 점섬공원과 부곡동의 제일CC를 포함한 지역으로 추정되는데 이 가운데 단원(檀園)과 단구(丹丘)가 있었으리라는 추정이 있습니다.

단원(檀園)의 풍경을 찾아서 - 김동준

 

단원(檀園)의 풍경을 찾아서

미적인 울림과 동행하며 그림 한 장으로 옛 풍경을 재생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무 아래 앉아 있는 서너 선비의 시선을 따라가면 시원한 숲과 노을로 물든 바다, 그리고 한 척의 돛배가

terms.naver.com

 

지금도 이름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으로 점섬체육관이 있습니다. 점성공원으로 불리는 곳은 점섬공원으로 혼용해서 부르는중입니다. 네이버지도나 카카오맵에서는 점성공원으로 나오지만 구글지도에는 점섬공원으로 나오는중입니다.

 

점성공원 산책길 영상 - 2021년 11월 단풍이 멋지게 드는 곳인데 작년에는 예년만 못했습니다. 화림선원에서 점성공원 점섬체육관을 지나 단원조각공원과 노적봉과 이어진 다리까지 산책길입니다. 이영상은 3년전이고 위 사진에 나오는 도산서원 견학이 불과 5년전인데 코로나 이전이라 십여년은 된듯 아득합니다. 새로운 단절감의 경험이었던 코로나였습니다.

 

 

 

근기남인들의 본거지였던 당시 안산에는 출사길이 막힌 여주이씨 진주유씨등의 선비들과 당대 예원의 총수로 불리던 표암 강세황을 필두로한 예술인들이 교류하며 자주 모이던 학문과 흥취가 넘치는 고장이었습니다. 막힌 출사길과 풍류가 넘치는 모습은 가만히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모습이지만 이런 환경에서 단원 김홍도가 어릴때부터 청년이 될때까지 많은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됩니다.

 

흥미로운 논문 

성호의 조카와 손자뻘 여주이씨들이 주축이되어 표암 강세황등이 참여해 선비의 풍류와 혈육의 우애가 느껴지는 문집에 대한 고찰

李嚞煥의 『剡社篇』에 대한 재고 - 18세기 안산지역 詩會의 맥락 검토를 겸하여 - 김동준

 

李嚞煥의 『剡社篇』에 대한 재고 - 18세기 안산지역 詩會의 맥락 검토를 겸하여

이 논문은 李嚞煥이 엮은 『剡社篇』을 대상으로 삼아, 이 자료가 18세기 安山 詩會의 맥락에서 어떤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가, 그것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문학 향유의 현장[詩會]과 관련하

www.kci.go.kr




댓글 쓰기

0댓글

댓글 쓰기 (0)